과학은 살아있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우주는 성장하는 생명체와 같으며, 우리 행성 가이아(Gaia)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법칙은 어쩌면 습관과 더 비슷할지도 모른다. 유물론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 의식의 자리를 찾는 ‘어려운 문제’의 결과로, 원자, 분자, 식물을 포함한 모든 자기 조직화 시스템에 어떤 형태의 마음, 경험 또는 의식이 연관되어 있다는 범심론적 철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어쩌면 태양도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고, 다른 별들과 은하 전체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주 전체의 마음은 어떨까? 루퍼트 셸드레이크는 이 아이디어가 시사하는 바를 탐구할 것이다.
루퍼트 셸드레이크는 생물학자이자 85편 이상의 과학 논문을 집필한 저자로, 2013년 ‘세계 100대 사상가’에 선정되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으며, 클레어 칼리지의 장학생으로 재학 중 이중 1등급 우등 학위를 취득하고 1963년 대학 식물학상을 수상했다. 셸드레이크 박사는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과 과학사를 공부한 뒤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1967년 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3권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2012년에는 『과학의 망상(The Science Delusion)』을 출간했다. 이 책은 현대 과학의 10가지 교리를 검토하고, 이를 어떻게 질문으로 전환하여 과학적 가능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영국 과학 의학 네트워크(British Scientific and Medical Network)로부터 ‘올해의 책상’을 수상했다. 그의 최신 저서인 『초월하는 방법, 그리고 그것이 효과가 있는 이유』(Ways To Go Beyond, And Why They Work)는 2019년에 출간되었으며, 개인적 변화를 가져오고 과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효과를 지닌 일곱 가지 영적 수행법을 다룬다. 루퍼트의 최신 활동 소식은 그의 웹사이트(www.sheldrak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강연문은 의식을 뇌의 국한된 활동으로 보는 현대 과학의 물질주의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범심론적 우주관을 제안합니다. 루퍼트 셸드레이크 박사는 고대 그리스와 중세 유럽의 애니미즘적 전통을 살피고, 만물이 기계라는 17세기 기계론적 혁명이 가져온 정신과 육체의 분절을 비판합니다. 그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빌려 물질을 정적인 것이 아닌 역동적인 과정으로 정의하며, 태양이나 은하 같은 거대한 체계도 자기 조직화된 의식을 가질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또한 인간의 의식은 영적 수행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우주의 더 큰 의식과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텍스트는 모든 자연 체계가 목적과 마음을 가진 생명체라는 전일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숲의 고요함이나 광활한 밤하늘을 마주할 때, 나를 넘어선 거대한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주류 담론은 이러한 직관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들은 의식을 오로지 뇌의 산물로만 보는 '뇌 중심적(Cerebrocentric)' 관점에 갇혀, 우주를 그저 무생물적인 물질들이 기계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로 정의합니다.
생물학자 루퍼트 쉘드레이크(Rupert Sheldrake) 박사는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주는 정말 의식 없는 죽은 기계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조직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인가?" 그는 현대 과학이 도그마처럼 받들어온 '기계론적 세계관'의 균열을 파고들며, 우리가 잃어버린 '살아있는 우주'에 대한 파격적인 통찰을 제시합니다.
2. 통찰 1: '기계 모델'은 자연을 이해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17세기 과학 혁명 이전까지 인류에게 자연은 살아있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자연에서 '영혼'을 완전히 짜내어 무생물적인 물질만 남기는 '탈생명화(deanimate)'를 단행했습니다. 그는 동식물과 인간의 몸을 영혼 없는 '자동인형(automata)'으로 정의했으며, 마음은 오직 인간과 신, 천사에게만 허락된 예외적인 영역으로 분리했습니다.
이 모델의 결정적 결함은 기계와 생명체의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기계는 외부의 설계자가 부품을 조립해 만든 '집합체'이며, 외부의 목적을 위해 작동합니다. 반면 생명체는 외부의 조립 없이 스스로를 조직(self-organizing)하며 내면의 목적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자연을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계에 비유하는 것은 생명의 본질을 오해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입니다.
"데카르트는 자연 전체를 탈생명화했습니다. 자연에서 영혼을 모두 짜내어 무생물적인 물질만 남겼고, 그 결과 자연 밖에는 신, 천사, 그리고 인간의 마음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3. 통찰 2: 물질은 '과정'이며, 마음은 그 '가상적 미래'이다
쉘드레이크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관점을 빌려 물질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딱딱한 당구공이 아니라 '파동(wave)'이자 '활동의 패턴'입니다. 파동은 찰나의 순간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과정(process)'**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과정에 두 개의 극(pole)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 물리적 극(Physical pole): 과거의 사실들이 확정되어 굳어진 상태, 즉 '과거'라는 물리적 사실입니다.
- 정신적 극(Mental pole): 미래의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선택하는 영역, 즉 **'가상적 미래(Virtual Futures)'**입니다.
이는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파동 방정식'**과 일맥상통합니다. 정신적 극이 수많은 가능성이 공존하는 '파동 함수'의 상태라면, 물리적 극은 그 가능성 중 하나가 선택되어 사실로 굳어지는 '파동 함수의 붕괴'와 같습니다. 의식은 습관이 지배하는 무의식적 과거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깨어납니다.
4. 통찰 3: 태양은 의식을 가진 '천상의 지성'일 수 있다
가장 파격적인 주장은 태양이 단순한 수소 폭탄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유기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쉘드레이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NASA의 태양 기상 예보(Solar weather forecasts)**를 예로 듭니다. 만약 태양이 단순한 물리 법칙으로만 움직인다면 그 활동은 완벽히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하지만 NASA는 태양의 변덕스러운 활동을 매일 예보합니다. 태양은 스스로 '선택'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듯한 복잡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인간 뇌의 전기 활동보다 훨씬 정교한 자기장 루프와 플라스마 대류 세포를 가지고 있으며, 11년 주기로 자기 극성을 역전시키는 등 거대한 전기적 활동을 수행합니다. 또한 '헬리오포즈(heliopause)'라는 자기장 막으로 태양계 전체를 감싸 보호하는 거대 유기체와 같습니다. 고대 문명이 태양을 신으로 숭배했던 것은 미신이 아니라, 우리 생명의 근원인 거대 지성에 대한 본능적 통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5. 통찰 4: 모든 것이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말과 자동차의 차이)
"그럼 의자나 바위도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쉘드레이크는 명확한 선을 긋습니다. 의식의 핵심은 '스스로를 조직하는 통합된 전체'인가에 있습니다. 그는 이를 **'말(Horse)과 자동차(Car)'**의 비유로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당신이 차를 운전할 때 차는 당신의 목적지로만 향합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쉘드레이크가 경험했듯, 말을 타면 말은 스스로의 목적지(마구간)를 선택해 방향을 틀어버리곤 합니다. 말은 '내면의 목적'을 가진 유기체이지만, 자동차는 부품을 모아놓은 기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 (스스로 조직되는 전체): 원자, 세포, 동물, 행성, 은하.
- 의식이 없는 시스템 (단순 집합체): 의자, 컴퓨터, 자동차, 양말, 바위 더미.
통합 정보 이론(IIT)이 제시하듯, 의식은 고도로 통합된 복잡성에서 발현됩니다. 공장에서 조립된 기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통합된 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6. 통찰 5: 과학계의 '벽장 속 영성'과 경험론적 혁명
흥미롭게도 현대 과학자들 중 상당수는 주류의 유물론적 도그마와는 다른 삶을 삽니다. 유럽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무신론자는 25%에 불과했으며, 45%는 스스로를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쉘드레이크는 이들을 **'벽장 속의 홀리스트(Closet holists)'**라고 부릅니다. 많은 과학자가 사석에서는 텔레파시나 신비 체험을 고백하면서도, 동료들의 비난이 두려워 공적인 자리에서는 철저한 유물론자인 척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론이 경험을 규정하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래 **'경험론적(Empirical)'**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경험(Experience)'을 의미합니다. 과학의 본질은 이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기계론적 유물론은 아이폰이나 제트기를 만드는 데는 훌륭한 이론이지만, 의식을 설명하는 데는 아마도 세상에서 최악의 이론일 것입니다."
7. 결론: 당신의 경험을 이론보다 믿을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나를 무의미한 기계 속의 부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거대하고 살아있는 우주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 쉘드레이크는 힌두교의 **'사치다난다(Sat-Chit-Ananda: 존재-의식-지락)'**나 기독교의 '삼위일체' 모델이 공통적으로 우주의 근원적 의식을 '존재, 형태, 에너지'로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우리가 명상이나 스포츠, 예술을 통해 느끼는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는 경험'은 뇌의 오작동이 아니라 우주의 거대 지성과 공명하는 순간입니다. 쉘드레이크는 우리에게 이론이라는 안경을 벗고, 스스로의 '경험'을 믿으라고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내일 아침 당신이 마주하는 태양이 당신의 기도를 듣고 반응하는 살아있는 지성이라면,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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