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유구한 전통의 귀환, 유행가와 시의 문학적 계보학
우리는 흔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가벼운 유흥으로, 교과서에 실린 시를 고결한 예술로 이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은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착각에 가깝습니다. 대중음악 비평가 프랭크 데이비(Frank Davey)가 지적하듯, 서정시와 대중가요의 가사는 본질적으로 '시(Poetry)'라는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는 예술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와 음악의 결합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영문학의 시초인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Beowulf)*는 하프 반주에 맞춰 낭송되던 '노래(Singan)'였으며, 중세 유럽의 트루바두르(Troubadours) 전통 역시 선율과 시어의 완벽한 결합을 전제로 했습니다. 1960년대, 밥 딜런과 레너드 코언이라는 두 거장의 등장은 단절되었던 이 유구한 전통을 현대 대중음악의 장으로 소환한 사건이었습니다.
2. 15분 vs 2년: 창작의 속도에 담긴 예술적 태도의 차이
두 예술가는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혔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들의 창작 스타일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이는 '학구적 정밀함'과 '즉흥적 영감'의 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예술적 기질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딜런이 코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쓴 'Hallelujah'라는 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노래를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코언은 "2년의 대부분(the best part of two years)을 바쳤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딜런은 깜짝 놀랐죠. 이번에는 코언이 딜런의 앨범 Infidels에 수록된 'I and I'를 쓰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물었습니다. 딜런은 "한 15분 정도요"라고 답했습니다. 코언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회상합니다. 딜런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죠.
코언이 단어 하나하나를 세공하여 완벽한 형식을 구축하는 장인적 면모를 보였다면, 딜런은 찰나의 영감을 포착하여 쏟아내는 예언자적 기질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3. 방랑자와 학자: 진실에 도달하는 두 가지 상반된 경로
이들이 대중음악이라는 예술적 정점에 도달한 과정 또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 밥 딜런(Bob Dylan): 가출 청소년 출신으로, 거친 노동과 독학을 통해 전문 작곡가가 된 '방랑자'입니다. 그는 훌륭한 노래에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가사가 수반되어야 함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우연히' 시적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그는 우디 거스리(Woodie Guthrie)와 같은 미국 포크 음악의 자생적 리듬감과 풍성한 이미지의 기교를 대중음악에 이식했습니다.
-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대학 교육을 받은 정통 형식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서정시가 노래라는 육신을 입을 때 더 넓은 대중과 호흡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뒤늦게 음악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언어의 학술적 정밀함과 엄격한 외부 형식을 음악적 그릇에 담아낸 '학자'형 예술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위대함이 '개인적 비전(Personal Vision)'에 대한 철저한 충성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프랭크 데이비는 예술가가 대중적 인기나 부, 비평가들의 찬사라는 **'거짓 뮤즈(False Muse)'**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비전을 지켜낼 때만 비로소 파생적이고 사소한(Derivative or Trivial)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4. '이방인'의 사랑: 소유와 거래를 거부하는 유대
기존의 팝송이 "I want you, I need you"와 같은 상투적인 소유욕과 갈망을 노래할 때, 딜런과 코언은 사랑에 대한 전혀 새로운 문학적 담론을 제시했습니다.
코언은 사랑의 관계를 **'구도자 혹은 이방인(Stranger)'**과 **'거래자(Dealer)'**의 대비로 설명합니다. '거래자'는 자유를 대가로 안식을 얻으려는 겁쟁이 연인이지만, 진정한 의미를 찾는 '이방인'은 사랑 안에서도 독립성을 잃지 않습니다. **"Sisters of Mercy"**에서 코언은 결혼이라는 종속적 계약 대신, 지친 여행자를 잠시 보살피고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자비의 수녀들' 같은 관계를 노래합니다. 여기에는 질투도, 소유하려는 의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딜런 역시 사랑을 사회적 구속이나 억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서 그는 여자가 자신의 영혼까지 소유하려 들자 단호히 독립을 선언하며 떠납니다. 그는 **"All I Really Want to Do"**에서 상대를 분류하거나(Classify), 단순화하거나(Simplify), 혹은 지배하려 하지 않고 오직 '친구'로서의 수평적 유대를 맺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피력했습니다.
5. 세상을 직시하는 두 시선: 묵시록적 심판과 실존적 용광로
부패하고 소외된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세계관은 '어두운 낭만주의(Black Romanticism)'의 두 단면을 보여줍니다.
밥 딜런의 비전은 본질적으로 **묵시록적(Apocalyptic)**입니다. 그는 악한 세상이 조만간 신성한 힘에 의해 심판받고 교체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특히 비평가 프랭크 데이비는 딜런의 **"A Hard Rain's A Gonna Fall"**에서 묘사된 '거친 비'를 원자폭탄 투하 이후에 내리는 '방사능 비'로 해석하며, 세상의 파괴적 종말이 눈앞에 닥쳤음을 경고하는 예언자적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의미 없는 소음, 소유권, 왕권, 시간, 형이상학, 법정, 과학, 지상 낙원의 꿈—딜런은 이 모든 것이 에덴의 문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간에 녹슨 나침반 날을 들고 / 알라딘과 그의 램프가 / 유토피아를 꿈꾸는 은둔 수도승들과 함께 / 황금 송아지에 옆으로 걸터앉아 있네 / 그들이 약속하는 낙원에선 /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리 / 에덴의 동산 안쪽을 제외하고는." (밥 딜런, "The Gates of Eden" 중)
반면 레너드 코언은 세상의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실존적 용광로(Furnace)**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Stories of the Street"**에서 그는 밤을 뚫고 기어가는 캐딜락과 독가스, 자살을 고민하며 창틀에 기댄 화자를 통해 현대 문명의 붕괴를 묘사합니다. "한쪽 눈엔 설계도(blueprints)를 가득 담고, 다른 쪽 눈엔 밤(night)을 가득 담은" 아이의 이미지는 시스템에 갇힌 인간의 비극을 상징합니다. 그는 이 잔혹한 현실에서 도망치는 대신 "도살장의 양(the lamb in the slaughter house)"처럼 운명을 수용하거나, **"Suzanne"**과 같은 신비로운 사랑의 찰나에서 위안을 얻고자 했습니다.
6. 결론: 우리 시대의 '검은 낭만주의자'들이 남긴 질문
밥 딜런과 레너드 코언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여 달콤한 거짓말을 파는 엔터테이너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악함과 추함,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붕괴까지도 단어와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 했던 **'검은 낭만주의자(Black Romantic)'**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예술 환경은 끊임없이 파생적이고 사소한 소비재를 생산할 것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이 두 거장은 시인의 소명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노래를 영원불멸한 '시'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대중의 일시적인 기호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비전을 희생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진정한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정직하고도 고통스러운 의무임을 이들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 Leonard Cohen and Bob Dylan
